작품 설명
피콜로 한 대, 클라리넷 두 대, 파곳, 트럼펫, 드럼, 그리고 두 파트의 바이올린과 베이스를 더한 작은 무도회 악단을 위한 음악입니다. 비올라가 빠진 자리는 같은 시기 K.534 〈뇌우〉와 공유하는 빈 호프부르크 레두텐잘 무곡 특유의 짜임새이지만, K.535에는 피콜로의 날카로운 윗선율과 트럼펫·드럼의 군대 신호가 더해져 무도회 음악으로서는 드물게 야전(野戰) 같은 음향이 만들어집니다. 전체 길이는 반복 포함 약 1분 30초의 단 한 곡짜리 콘트라당스로, 안에는 다섯 토막의 짧은 장면이 잇달아 지나갑니다. 첫 가락이 무도회의 줄춤을 이끌고 들어오면 곧이어 트럼펫·드럼이 군대 신호를 보내고, 빠른 음형이 교전을 그리듯 오갑니다. 자필 악보 마지막 토막에는 모차르트가 직접 적어 둔 〈Marcia turca(터키 행진)〉이라는 손글씨가 남아 있어, 그해 합스부르크가 향해 가던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음악적으로 가리키는 자리임이 분명합니다. 이 곡과 짝을 이루는 또 한 곡의 시사적 콘트라당스는 같은 1788년 1월의 K.534 〈뇌우〉(1월 14일자 자필 목록)입니다. 하나는 자연의 폭풍을, 다른 하나는 베오그라드를 향한 군대의 행군을 무도회 음악으로 옮긴 셈으로, 두 곡을 나란히 들으면 같은 단출한 편성 안에서 모차르트가 풍경의 결을 어떻게 다르게 다듬어 냈는지 가늠하기 좋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1787년 12월 7일, 모차르트는 글루크의 후임으로 황제 요제프 2세의 "황실 실내 작곡가(k.k. Kammermusicus)" 자리에 임명되었습니다. 봉급은 800플로린으로 글루크가 받던 2,000플로린에 비하면 한참 적었지만, 그 자리에는 분명한 의무가 따라붙었습니다. 매년 카니발 시즌에 빈 호프부르크의 레두텐잘에서 열리는 황실 무도회를 위해 춤곡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K.535 〈라 바타이유〉는 모차르트가 그 새 의무에 따라 1788년 카니발 시즌에 써 낸 시사적 콘트라당스 한 쌍 중 하나입니다. 모차르트는 자기 작품 목록 〈Verzeichnüss aller meiner Werke〉의 1788년 1월 23일자에 "Eine Contredance, die Bataille genannt(전투라 불리는 콘트라당스 한 곡)"라고 적어 두었고, 같은 달 14일에 등재한 K.534 〈뇌우〉와 짝을 이뤄 그 시즌 빈 무도회장의 새 작품으로 올랐습니다. 부제 〈Bataille(전투)〉는 그저 비유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필 악보 마지막 다섯 번째 토막 위에는 모차르트가 직접 적어 둔 〈Marcia turca(터키 행진)〉이라는 손글씨가 남아 있는데, 이는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코앞에 두고 있던 그 시점의 시사를 가리킵니다. 빈에서는 1787년 말부터 대(對)터키 전쟁이 임박해 있었고, 작곡 직후인 1788년 2월 9일에는 황제 요제프 2세가 공식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K.535는 그 선전포고를 불과 2~3주 앞두고 무도회장 손님들에게 들려준, 일종의 음악적 시국 만평인 셈입니다. 작곡 이듬해인 1789년 1월 17일, 빈의 출판상 아르타리아(Artaria)는 이 곡의 클라비어(피아노) 편곡판을 〈Die Belagerung Belgrads(베오그라드의 포위)〉라는 새 표제와 함께 빈 신문 〈Wiener Zeitung〉에 광고하며 인쇄해 냈습니다. 이는 1789년 가을 합스부르크 군이 실제로 베오그라드 요새를 함락시킨 시점과 맞물려, 모차르트의 짧은 무곡이 한 시즌의 시사적 화두로 다시 호명된 자리이기도 합니다. 관현악 원본은 한참 뒤인 1882년에 라이프치히의 브라이트코프&헤르텔이 펴낸 〈모차르트 전집〉에 구스타프 노테봄(Gustav Nottebohm)의 편집으로 처음 활자 악보로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