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C단조 4/4박자에 스무 마디로 이루어진 단일 곡입니다. 세 연으로 된 시를 절마다 같은 선율로 되풀이하는 유절 형식 대신, 가사가 흘러가는 대로 음악이 계속 새로 쓰이는 통작 형식을 택했습니다. 짧은 분량에 비해 사건의 밀도가 대단히 높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선율은 기교적인 장식을 거의 두지 않고 한 음절에 한 음씩 붙는 낭송조로 나아갑니다. 노래하는 사람의 말투와 억양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성악가에게는 화려한 고음보다 가사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극적인 장치는 피아노가 맡습니다. 6마디부터 왼손이 굴리는 아르페지오는 타오르는 불길과 배신당한 마음의 분노를 동시에 그려내고, 12마디 부근에서 32분음표가 위로 치솟는 대목은 편지를 삼킨 불티가 흩어지는 광경을 옮겨 놓은 듯 들립니다. 마지막에는 노래가 멎은 뒤 피아노만 남아 첫머리 음형을 짧게 되울리며 곡을 닫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모차르트는 이 곡을 1787년 5월 26일 빈 란트슈트라세 교외에 있던 친구 고트프리트 폰 야퀸의 방에서 하루 만에 써냈습니다. 자필보에는 그날의 날짜와 장소가 작곡가 자신의 손으로 적혀 있습니다. 당시 그는 〈돈 조반니〉 작곡에 막 들어간 참이었고, 이 노래를 마친 이틀 뒤인 5월 28일 아버지 레오폴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야퀸 가문은 모차르트와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아버지 니콜라우스 요제프와는 함께 가정음악회를 열었고, 딸 프란치스카는 피아노를 배우는 제자였으며, 케겔슈타트 삼중주 K.498도 이 집에서 처음 울렸습니다. 당시 스물한 살이던 아들 고트프리트와는 특히 가까웠는데, 이 가곡을 아예 그에게 가지라고 내줄 정도였습니다. 야퀸은 자기 이름을 붙인 여섯 곡짜리 모음집에 그것을 옮겨 넣었고, 1791년 빈의 라우렌츠 라우슈가 그 가곡집을 펴냈습니다. 실린 여섯 편 가운데 실제 모차르트의 작품은 이것과 〈꿈의 영상〉 K.530 둘뿐이었습니다. 곡이 제 이름을 되찾은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 1799년 3월 27일 콘스탄체 모차르트가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에 편지를 보내, 야퀸의 작품으로 알려진 두 곡이 실은 남편의 것이며 그중 하나에는 야퀸의 집에서 썼다는 사실이 남편 필적으로 남아 있다고 알렸습니다. 이 증언 덕분에 같은 해 브라이트코프 전집에서 비로소 진짜 작곡가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자필보는 완성작의 매끈한 겉모습과 달리 고쳐 쓴 흔적으로 가득합니다. 「멜랑콜리의 아이들」이라는 구절에서는 독일어 강세와 선율이 어긋나자 세 번을 다시 썼고, 앞의 두 판을 모두 그어버린 뒤 악보 아래 남은 여백에 새 선율을 적어 넣었습니다. 끝맺음도 한 번 바뀌었습니다. 원래는 성악의 마지막 음절과 함께 으뜸화음으로 닫았는데, 종지선을 몇 번이나 힘주어 지우고 첫머리를 되울리는 피아노 후주를 새로 덧붙였습니다. 두 쪽짜리 이 자필보는 이후 긴 여정을 거쳤습니다. 콘스탄체가 요한 안톤 안드레에게 넘긴 대량 컬렉션에 섞여 있다가 에스테르하지 백작을 거쳐 영국 스펜서 가문에까지 흘러갔고, 1985년과 2003년 두 차례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습니다. 2003년 12월 낙찰가는 25만 1,650파운드였습니다. 한편 이 곡이 언제 처음 청중 앞에서 불렸는지는 어느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야퀸 집안의 사적인 모임에서 부르려고 쓴 곡이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