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느린 서주로 시작하는 모차르트의 몇 안 되는 교향곡입니다. 1악장 서주는 그때까지 작곡된 주요 교향곡 중 가장 길고 정교한 서주로 평가받으며, 장엄한 D장조의 위용과 반음계로 하강하는 긴장이 교차하며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어지는 Allegro는 모차르트가 쓴 교향곡 악장 중 가장 복잡한 축에 속하며, 두 주제가 대위법적으로 얽히면서 발전부의 드라마를 끌어올립니다. 2악장 Andante는 오페라 아리아처럼 노래하는 선율이 특징이며, 같은 해 초연한 《피가로의 결혼》 1막의 카논 듀엣 "Cinque, dieci, venti"를 떠올리게 하는 모티브가 슬며시 등장합니다. 서정적인 제1주제와 단조로 기우는 긴장의 대비가 작곡가의 내면을 비추듯 깊어집니다. 3악장 Presto는 미뉴에트를 생략하고 곧장 달려가는 피날레로, 《피가로》 1막의 "Aprite, presto, aprite"가 들려주던 숨 가쁜 흥분을 그대로 교향곡 언어로 옮겨놓은 듯한 질주를 보여줍니다. 관악기 활용에서도 획기적인 진전을 보여줍니다. 현악기가 전혀 연주하지 않고 다양한 관악 앙상블만으로 전개되는 구간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이는 동시대 교향곡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시도였습니다. 이러한 관악 실내악적 텍스처는 이후 모차르트의 마지막 세 교향곡에서 더욱 정교해졌고, 하이든의 런던 교향곡들과 베토벤·슈베르트의 교향곡에도 영향을 남겼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1786년 늦가을, 《피가로의 결혼》이 프라하에서 그야말로 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빈에서의 반응이 부침을 겪는 사이에도 보헤미아 청중은 모차르트의 이름을 거리의 유행가처럼 불러댔고, 결국 프라하에서 초청장이 날아옵니다. 모차르트는 아내 콘스탄체, 동료 음악가들, 하인, 심지어 애견 가우케를까지 데리고 프라하로 향했고, 잘츠부르크 시절부터 알고 지낸 후원자 프란츠 요제프 툰 백작의 저택에 머물며 성대한 식사와 음악회, 무도회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1787년 1월 19일, 훗날 《돈 조반니》를 초연하게 될 바로 그 프라하 국립극장(오늘날 에스타테스 극장)에서 모차르트 자신의 지휘로 이 교향곡이 처음 울렸습니다. 현장에 있던 초기 전기 작가 프란츠 니메체크는 이날의 청중이 "무엇에 더 경탄해야 할지 몰랐다 — 이 놀라운 작품인지, 그의 놀라운 연주인지"라고 기록했습니다. 프라하 방문의 여운은 고스란히 같은 해의 《돈 조반니》 의뢰로 이어졌습니다. 음악학자 앨런 타이슨이 자필 악보의 종이를 분석한 결과, 3악장이 먼저 작곡되었음이 드러났습니다. 3악장의 종이는 《피가로의 결혼》을 쓰던 시기의 것과 같고, 1~2악장은 1786년 12월의 다른 작품들과 같은 종이 위에 쓰여 있었습니다. 타이슨은 모차르트가 애초에 파리 교향곡(K.297)을 프라하로 가져가 새 피날레만 붙이려 했다가, 결국 완전히 새로운 교향곡을 쓰기로 결심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미뉴에트 악장이 없는 이유로는 시간 부족, 프라하 청중이 빈풍 무곡을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 또는 앞선 두 악장이 이미 충분히 거대하여 미뉴에트가 전체 균형을 깨뜨릴 것이라는 판단 등이 제시됩니다. 자필 악보는 오랫동안 베를린 프로이센 국립도서관이 보관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분산 보관된 뒤 오늘날 폴란드 크라쿠프의 야기엘로인스키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초판은 1800년경 오펜바흐의 요한 안톤 안드레(Johann Anton André)가 출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