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총 4악장의 현악 4중주입니다. 1악장 알레그레토(D장조), 2악장 메누에토. 알레그레토(D장조, 트리오는 d단조), 3악장 아다지오(G장조), 4악장 알레그로(D장조)의 고전적 4악장 짜임새입니다. 다만 같은 시기 다른 4중주들과 비교해 안쪽 두 악장 사이의 무게 분배가 다소 다릅니다. 메누에토는 4악장 중 가장 짧고 아다지오는 가장 길게 흐르는 까닭에, 작품의 정서적 무게가 한가운데의 느린 악장에 크게 모여 있습니다.
음악적으로 가장 또렷한 특징은 "다성적인 짜임새"입니다. 같은 시기 고전 현악 4중주가 1바이올린 선율을 나머지 세 성부가 받쳐 두는 방식으로 짜였다면, 본 작품은 4악기가 서로의 동기를 따라 부르고 한 박씩 어긋나 들어오며 카논과 모방의 짜임새를 작품 곳곳에 펼쳐 둡니다. 1악장 첫 주제부터 1바이올린이 시작한 6도 도약 동기를 비올라가 한 마디 뒤에서 따르고, 2악장 메누에토에서는 1바이올린과 비올라가 거의 준-카논(near canon)에 가까운 짜임새로 움직입니다. 트리오에서는 두 바이올린이 한 쌍, 비올라와 첼로가 다른 한 쌍으로 묶여 이중 모방(double imitation)을 펼쳐 보입니다. 모차르트가 〈하이든 4중주〉에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간 다성적 짜임새가 본 작품에서 가장 또렷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자필악보는 영국 도서관(British Library, Add. 37764)에 28장 분량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1786년 12월 호프마이스터 출판사가 빈에서 첫 파트보를 펴내며 모차르트 생전에 출판된 4중주가 되었습니다. 〈하이든 4중주〉가 1785년 빈의 아르타리아(Artaria) 출판사에서 6곡 묶음으로 나온 직후, 본 작품은 출판사를 바꿔 단 한 곡으로 다시 풀려나간 셈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1786년 봄·여름의 빈, 모차르트의 책상에는 두 가지 짐이 동시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5월 1일 부르크테아터에서 막 초연을 마친 〈피가로의 결혼〉(K.492)의 여운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출판인 프란츠 안톤 호프마이스터(Franz Anton Hoffmeister, 1754~1812)와의 약속이 놓여 있었습니다. 호프마이스터는 1784년 빈에 새 출판사를 차린 인물로, 본인이 작곡가이면서 동시대 빈에서 활동한 동료들의 새 작품을 직접 출판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 가고 있었습니다.
모차르트와 호프마이스터의 관계는 1785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해 호프마이스터는 모차르트의 〈g단조 피아노 4중주〉 K.478을 출판해 주었고, 두 사람은 같은 빈 프리메이슨 지부("Zur gekrönten Hoffnung" 지부)의 동료로 알려져 있어 음악 출판을 사이에 둔 단순한 거래 이상의 관계로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호프마이스터는 모차르트가 빚을 진 채권자에게 약속어음을 보증해 주었다는 기록도 한 가닥 남아 있습니다. 본 작품을 친구에게 헌정한 일은 음악적 빚뿐 아니라 살림의 빚까지 동시에 갚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호프마이스터는 그 무렵 새로운 출판 기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동시대 빈 작곡가들의 새 현악 4중주를 단 한 곡씩 차례로 펴내는 정기 출판 시리즈(Quartetto Periodico)였습니다. 〈하이든 4중주〉처럼 6곡 묶음으로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작곡가가 한 곡씩 내놓은 새 작품을 호프마이스터 출판사가 정기적으로 펴내는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본 작품은 그 시리즈의 첫 곡으로 들어왔고, 같은 시기 호프마이스터는 하이든의 현악 4중주 Op. 42(Hob. III:43, 작품 No. 35)를 같은 시리즈로 펴내기도 했습니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같은 출판인의 같은 시리즈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짧은 순간입니다.
작품은 1786년 8월 19일 자필 작품 목록에 기재되었고, 같은 해 12월 호프마이스터 출판사에서 첫 파트보로 출판되었습니다. 자필악보 끝면에는 별도의 헌정사가 없습니다. 모차르트가 호프마이스터에게 직접 "친구를 위한 곡"이라 적어 둔 흔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1786년 12월의 호프마이스터 출판사 카탈로그가 본 작품을 "Quartetto Periodico" 시리즈의 첫 곡으로 명기해 두면서 후세는 본 작품을 그 출판인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본 작품에는 또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하이든 4중주〉처럼 6곡 묶음으로 풀어 둘 계획이 본래 있었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짐작입니다. 모차르트가 본 작품 한 곡을 적어 둔 뒤 호프마이스터의 정기 시리즈가 상업적으로 부진해 시리즈 자체가 곧 닫혀 버렸고, 그 결과 모차르트의 다음 4중주는 3년 뒤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위촉으로 풀려나간 〈프로이센 4중주〉 K.575·K.589·K.590으로 이어집니다. 〈하이든 4중주〉와 〈프로이센 4중주〉 사이에 단 한 곡 남은 본 작품은, 어쩌면 모차르트가 친구의 새 출판 시리즈를 위해 이어서 적어 두려 했던 6곡 묶음의 첫 곡이었을지 모릅니다. 본 작품 이후 호프마이스터의 정기 시리즈에 모차르트의 새 4중주는 한 곡도 더 들어오지 못한 채 그 기획이 닫혔습니다.
호프마이스터는 본 작품 이후로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계속 펴냈고, 1791년 모차르트가 빈에서 떠난 뒤에도 그 추모 출판에 한몫 거들었습니다. 별명 "호프마이스터"는 단순한 출판인의 이름이 아니라, 1786년 여름의 빈에서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한 곡을 적어 건네던 짧은 순간의 기록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