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이 4중주는 전통적인 4악장 구성을 따르지만, 1악장의 22마디에 달하는 아다지오 서주가 음악사에 길이 남을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첼로의 조용한 도(C)음 위에 비올라의 내림가(Ab)음, 제2바이올린의 내림마(Eb)음이 차례로 겹쳐지고, 마지막으로 제1바이올린이 가(A)음으로 진입하면서 내림가음과 가음 사이의 긴장이 형성됩니다. 이 불협화는 인쇄 오류가 아니라 모차르트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으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적 특징이 됩니다. 하이든의 작품번호 33 4중주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으며, 네 악기의 평등한 성부 작법과 주제 전개의 치밀함에서 하이든의 영향이 드러납니다. 동시에 모차르트는 바흐의 대위법을 결합하여 네 성부를 동시에 작곡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이 4중주는 1782년부터 1785년까지 작곡된 6개의 현악 4중주 중 마지막 작품으로, 모차르트가 요제프 하이든에게 헌정했습니다. 어떤 후원자의 의뢰도 없이 작곡된 개인적 작품이며, 헌정사에서 모차르트는 이 4중주들을 "오랜 고된 노력의 결실"이자 자신의 "자녀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작곡가에게 헌정하는 것은 귀족이나 연주자에게 헌정하던 당시 관례에서 벗어난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1785년 2월 12일, 모차르트와 아버지 레오폴트는 하이든을 위해 이 4중주와 K.458, K.464를 연주했습니다. 모차르트는 비올라를 연주했고, 안톤과 바르톨로메우스 틴티가 다른 파트를 맡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연주를 들은 하이든은 레오폴트에게 "당신의 아들은 제가 아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출판 후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헝가리의 그라살코비치 공작은 불협화음에 분노하여 연주자들의 악보를 찢어버렸고, 이탈리아 출판사는 오류투성이라며 악보를 반송했습니다. 작곡가 주세페 사르티는 이 서주를 "혐오스럽다"고 비난하며 모차르트를 "철로 막힌 귀를 가진 피아노 연주자"라고 혹평했습니다. 반면 하이든은 "모차르트가 이렇게 썼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옹호했습니다. 1785년 9월 17일 아르타리아 출판사가 6개의 4중주 전체를 출판했으며, 레오폴트 모차르트에 따르면 출판권료로 100두카트를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