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B♭장조의 단악장 성악 앙상블로, 자필 단편의 분량은 모두 16장(15장 기보)입니다. 페트로셀리니가 쓴 이탈리아어 가사는 아마조네스의 대왕국을 무대로 한 어느 코믹 오페라 장면을 그려, 테너 한 명과 베이스 두 명이 주고받는 형태로 펼쳐집니다. 오케스트라는 오보에·바순과 현 5부에 관악 한 짝이 더해진 빈 시절의 표준 편성에 기반합니다.
다만 자필의 관악 편성을 두고 자료가 갈립니다. 신모차르트전집과 IMSLP는 클라리넷 두 대를, 모차르테움의 공식 쾨헬 데이터베이스는 호른 두 대를 적습니다. 어느 쪽이 자필의 원래 모습에 가까운지는 짧은 4쪽 분량의 단편만으로는 결론짓기 어렵습니다.
성악 편성을 두고도 두 갈래의 표기가 공존합니다. 쾨헬 공식 카탈로그는 이 곡을 지금도 "Quintetto: 소프라노 2, 테너, 베이스 2를 위한"이라는 표제로 적어 두는데, 이는 본래 다섯 명이 등장하는 오페라 장면을 위해 구상된 5중창이라는 학자들의 추정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음악이 적힌 성부는 테너 한 명과 베이스 둘뿐이어서, 1885년 첫 인쇄 이래 출판 악보는 줄곧 "Terzett(테너와 두 베이스를 위한 삼중창)"이라는 표제로 발간되어 왔습니다. 영문 위키피디아와 IMSLP, 그리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상업 녹음(Hans Peter Blochwitz·Anton Scharinger·René Pape) 모두 같은 입장을 따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이 단편이 모차르트의 손에서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끊겼는지는 자필 악보 16장 외에 직접적인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가사를 적은 주세페 페트로셀리니의 대본은 같은 시기 동시대 작곡가 아고스티노 아코림보니가 쓴 오페라 〈아마조네스의 대왕국 Il regno delle Amazzoni〉의 텍스트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로부터 학자들은 이 단편이 아코림보니 오페라의 한 장면을 위한 삽입곡이거나 대체 넘버로 기획되었을 가능성을 짚어 둡니다. 모차르트 자신이 독립 창작으로 시작했는지, 위탁받은 삽입곡이었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자취는 쾨헬 번호 그 자체에 있습니다. 1862년 루트비히 폰 쾨헬이 펴낸 초판 카탈로그에는 이 곡이 아예 실리지 않았고, 1937년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이 손본 3판에서야 비로소 K³.424b로 등재되었습니다. 1964년 6판에서는 다시 K⁶.480b로 자리를 옮겼고, 현재의 9판에서는 K.434라는 번호로 정착했습니다. 한 작품이 같은 카탈로그 안에서 세 차례 번호를 갈아입은 사례는 모차르트 카탈로그 안에서도 드뭅니다.
모차르트가 빈에 정착한 뒤 미완으로 남긴 오페라 단편은 이 곡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1783년에 〈카이로의 거위 L'oca del Cairo〉 K.422와 〈실망한 신랑 Lo sposo deluso〉 K.430을 손에 쥐었다가 어느 것도 끝맺지 못했고, 그로부터 두어 해 뒤에 적기 시작한 이 〈아마조네스의 대왕국〉 역시 한 장면만 남긴 채 멈췄습니다. 〈피가로의 결혼〉 K.492(1786)라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던 길목에서도, 모차르트의 작업대에는 이렇게 끝에 닿지 못한 오페라 장면들이 거듭 쌓여 있었습니다.
자필 악보는 19세기 중반 한 차례 필사본이 만들어졌고, 1885년에 라이프치히의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이 모차르트 전집의 일부로 처음 인쇄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편집은 음악학자 필리프 슈피타가 맡았습니다. 이후 1972년과 2002년에는 신모차르트전집(NMA)이 두 차례에 걸쳐 학술 비평판을 내놓아, 4쪽 분량의 단편 한 장이 지금의 모습으로 정리되기까지 한 세기 반 동안 여러 손을 거쳐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