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전통적인 미사 통상문 구성을 따르되, 바흐의 B단조 미사에 비견될 만한 대규모 미사 솔렘니스를 지향한 작품입니다. 바론 판 슈비텐의 일요 살롱에서 접한 바흐와 헨델의 음악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이중 합창 푸가와 정교한 대위법이 모차르트 특유의 갈랑 양식 및 이탈리아 성악 양식과 자연스럽게 결합됩니다. 잘츠부르크 시절 콜로레도 대주교가 요구했던 45분 이내의 미사 제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작곡한 최초의 미사곡으로, 각 부분이 독립적인 악장 규모로 확장되어 있습니다. 두 명의 소프라노 독창자를 요구하는 점이 특징적이며, 소프라노 I 파트는 콘스탄체의 목소리를 위해 특별히 작곡되었습니다. 키리에와 글로리아는 완전히 오케스트레이션되어 있으나, 크레도는 두 곡만 남아 있고 그마저 관현악 내성부가 미완성입니다. 상투스와 베네딕투스는 대부분 완성되어 있으며, 아뉴스 데이는 전혀 작곡되지 않았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모차르트는 1782년 콘스탄체 베버와의 결혼을 앞두고, 결혼이 성사되면 미사곡을 봉헌하겠다는 서약을 했습니다. 1783년 1월 4일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직 여기에 완성을 기다리며 놓여 있는 미사 반쪽의 악보가, 제가 정말로 그 약속을 했다는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라고 썼습니다. 1783년 7월 말 부부는 잘츠부르크를 방문하여 콘스탄체를 레오폴트와 난네를에게 소개했습니다. 10월 26일 성 페터 수도원 성당에서 미사가 초연되었으며, 콘스탄체가 소프라노 독창을 맡아 '크리스테 엘레이손', '라우다무스 테', '성육신' 등을 노래했습니다. 모차르트는 오르간을 연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빈으로 돌아온 후 미사를 완성하지 못했는데, 빈에서는 대규모 교회음악에 대한 수요가 없었고 오페라와 피아노 협주곡 등 다른 작곡에 몰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1785년에는 완성된 키리에와 글로리아를 빈 음악가 협회의 의뢰로 칸타타 《참회하는 다비드》 K.469로 개작하여 재활용했습니다.
모차르트, 칸타타 《참회하는 다비드》 K.469 (1785): 키리에와 글로리아의 8개 곡을 이탈리아어 가사로 개작하고 새로운 아리아 2곡을 추가
레너드 번스타인 실황 영상 (1990):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의 연주를 험프리 버튼 감독이 영화로 기록,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
로버트 레빈, 미사 C단조 완성판 (2005): 누락된 크레도, 아뉴스 데이 등을 보완한 가장 야심적인 학술적 완성판으로 Carus-Verlag에서 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