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악장이 둘뿐이지만 들리는 인상은 세 부분에 가깝습니다. 첫 악장이 느긋한 아다지오 도입부를 품은 뒤 빠른 악상으로 넘어가고, 두 번째 악장이 주제와 변주를 맡기 때문입니다. 세 악장이 표준으로 자리 잡아 가던 시기에 굳이 둘로 접어 둔 설계가, 이 곡을 같은 묶음의 다른 다섯 곡과 구별해 줍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조성의 어긋남입니다. 표제는 G장조인데 첫 악장의 빠른 부분이 같은 으뜸음의 G단조로 내려앉고, 그대로 가라앉은 채 문을 닫습니다. 앞서 들려준 화창한 아다지오는 끝내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악장에서도 네 번째 변주가 단조로 흐려지니, 장조 작품이라는 표찰이 무색할 만큼 침침한 구간이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건반과 바이올린의 관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표제는 여전히 「클라비어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로, 바이올린을 반주자로 놓는 옛 관습이 이름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짜임을 들여다보면 아다지오의 노래를 바이올린이 이어받고 변주에서는 두 악기가 번갈아 앞으로 나서니, 어느 한쪽이 뒤로 물러나 있지 않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1781년 3월, 뮌헨에서 〈이도메네오〉 초연을 마친 모차르트는 고용주인 잘츠부르크 대주교 콜로레도의 호출을 받고 빈으로 향했습니다. 대주교 일행이 머물던 독일기사단관에 짐을 풀었고, 4월 8일 저녁 그곳에서 열린 음악회에 나설 곡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그 전날 밤에 쓴 곡이 이 소나타입니다. 모차르트는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보낸 편지에 어젯밤 11시와 12시 사이에 바이올린 반주가 딸린 소나타를 하나 작곡했다고 적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모자라 함께 연주할 궁정악단 악장 안토니오 브루네티에게는 바이올린 성부만 적어 건네고, 정작 자신이 칠 건반 성부는 종이에 옮기지 못한 채 머릿속에 담아 두었습니다. 초연 무대에서 그는 악보 없이 자기 몫을 연주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자필 악보는 그 연주가 끝난 뒤 출판을 위해 정서한 것입니다. 그해 11월, 빈의 출판업자 아르타리아가 K.296과 K.376부터 K.380까지를 묶어 여섯 곡의 소나타를 작품 2로 펴냈습니다. 헌정 대상은 모차르트의 빈 시절 제자 요제파 바르바라 아우언하머였고, 이 묶음은 지금도 그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4월의 음악회에서 대주교 앞에 섰던 모차르트가 몇 주 뒤 콜로레도와 결별하고 빈에 홀로 남았으니, 이 여섯 곡은 독립 직후의 그가 도시에 내민 첫 명함이기도 했습니다.
첼로와 피아노, 플루트와 피아노, 오보에나 클라리넷과 피아노 등 여러 편성으로 옮긴 편곡본이 후대에 출판되어 지금도 연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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