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종이 한 장에 다 들어가는 작은 곡입니다. 같은 가락에 두 절의 노랫말을 얹어 되풀이하는 유절 형식이라, 악장 구분도 이야기의 굴곡도 두지 않았습니다. 만돌린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게 쪼갠 음을 굴리며 화음을 흩뿌립니다. 발현악기의 소리는 활로 켜는 악기처럼 길게 이어지지 않으니, 음을 계속 튕겨 울림을 채워 두는 방식이지요. 노래는 그 위를 나룻배가 물결을 타듯 느긋하게 오르내립니다. 반주에 저음 성부가 아예 없다는 점이 이 곡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만돌린이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음이 가온다에 머무는 탓에, 아래를 받쳐 줄 소리를 넣고 싶어도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건반도 통주저음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노래와 만돌린 두 줄만으로 곡 전체가 지탱됩니다. 화성은 C장조의 기본 화음 언저리를 벗어나지 않고, 목소리에 기교를 요구하는 대목도 없습니다. 성부를 소프라노나 테너로 못 박아 두지 않아서, 남성 성악가와 여성 성악가가 모두 즐겨 부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모차르트는 1780년 11월 초 잘츠부르크를 떠나 뮌헨에 닿았습니다. 오페라 〈이도메네오〉를 완성하고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였고, 초연은 이듬해 1월 말에 이루어졌습니다. 넉 달 남짓한 그 체류 기간에 만돌린 반주를 붙인 노래 두 곡이 나왔습니다. 하나가 〈만족〉 K.349이고, 다른 하나가 이 곡입니다. 당시 그는 생애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무대 작품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종이 한 장이면 끝나는 노래를 적어 둔 셈입니다. 누가 부탁했는지, 누구에게 바쳤는지, 언제 처음 불렸는지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노랫말을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짝을 이루는 K.349의 시인이 요한 마르틴 밀러로 밝혀진 것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자필 악보는 전하지 않습니다. 이 곡을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은 후대에 옮겨 적은 사본 두 벌 덕분입니다. 그중 빈 악우협회에 있는 사본 표지에는 「랑 씨를 위하여, 1780년, 모차르트 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랑 씨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한 줄이 작곡 연도를 짚어 주는 몇 안 되는 실마리입니다. 이 사본이 거쳐 온 손들이 흥미롭습니다. 19세기 모차르트 전기의 저자 오토 얀이 가지고 있다가 루트비히 폰 쾨헬에게 넘어갔고, 쾨헬이 세상을 떠난 뒤 유고에 섞여 남았습니다. 모차르트 작품에 번호를 매겨 오늘날의 K번호 체계를 만든 사람이, 이 노래의 1차 자료를 직접 손에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한 벌은 베를린에 있는데 이 역시 오토 얀에게서 출발한 사본입니다. 자필보가 없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편집자들을 조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1877년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이 펴낸 옛 전집에 이 곡이 실렸을 때, 악보 첫 장에는 「1780년에 작곡된 것으로 전해짐」이라는 단서가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연도를 단정하지 못하겠다는 뜻이었지요. 다만 진위 자체가 의심받은 적은 없습니다.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의 공식 목록은 이 곡을 검증된 모차르트 작품으로 분류합니다. 제목과 악기가 어긋나는 문제도 줄곧 따라다닙니다. 노랫말은 치터를 부르는데 악보에 지시된 악기는 만돌린입니다. 18세기 남독일에서는 줄을 뜯어 소리 내는 악기들의 이름이 오늘날처럼 엄격히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제 음반 중에는 만돌린 대신 치턴을 든 연주도 있습니다. 만돌린을 반주 악기로 세운 이 발상은 몇 해 뒤 훨씬 유명한 대목으로 되살아납니다. 〈돈 조반니〉에서 주인공이 창밖에서 만돌린을 뜯으며 부르는 세레나데가 그것입니다. 모차르트가 만돌린을 위해 남긴 음악은 손에 꼽을 만큼 적은데, 이 곡은 그 단출한 목록의 앞머리에 놓입니다.
막스 프리들렌더가 만돌린 반주를 피아노로 옮긴 성악·피아노 편곡을 에디션 페터스에서 출판했습니다. 원조성인 C장조의 높은 성부용과 A장조로 낮춘 성부용 두 종류가 나왔습니다.
이보 사리치가 노래 없이 피아노 홀로 연주하는 편곡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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