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D장조, 약 45분, 7악장 —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 시기에 적어 둔 세레나데 중 가장 늦고 가장 큰 작품입니다. 보통 세레나데가 5~6악장으로 끝나는 데 비해 이 곡은 일곱 자리를 펼쳐 두고, 그 한가운데에 3·4악장(콘체르탄테와 론도)을 별도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같은 소품 한 쌍으로 끼워 넣은 짜임새가 인상적입니다. 악기 편성은 세레나데로서 이례적으로 크고 정밀합니다. 플루트와 오보에가 같은 자리에 함께 앉고(같은 연주자가 번갈아 부는 자리가 아닌, 별도 자리로 동시에 울리는 방식), 트럼펫과 팀파니가 들어와 있고, 무엇보다 6악장 두 번째 트리오에만 등장하는 우편마차 호른(Posthorn)이 단 한 자락의 신호음으로 자리 잡습니다. 3·4악장의 콘체르탄테 자리에서는 플루트·오보에·바순(혹은 자료에 따라 바이올린)이 한 자리씩 떠올라 독주를 펼쳐 둡니다. 자필악보는 베를린 국립도서관(Staatsbibliothek zu Berlin)에 보관되어 있으며, 모차르트 사후 약 13년이 지난 1792년 무렵 오펜바흐의 요한 안드레(Johann André) 출판사가 초판을 펴냈습니다. 초판은 한때 “Op.22 Sinfonie”로 표기되어 유통되기도 했습니다. 본래 야외 의식용 음악이었기 때문에 행진곡 K.335 No.1(D장조)이 도착·퇴장 신호로 함께 연주된 것으로 보이며, 오늘날 콘서트장에서는 K.335가 빠진 7악장만 단독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잘츠부르크 대학교에는 매년 8월 종강 무렵 “피날무지크(Finalmusik)” 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졸업·진급을 앞둔 학생들이 학장과 후원자에게 감사 인사로 거리에서 야외 세레나데를 연주하던 자리로, 학생들은 보통 두 차례 — 대학 안뜰에서 한 번, 그 다음 후원자 저택 앞으로 행진해 가서 또 한 번 — 같은 곡을 풀어 두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 자리를 위해 1773년부터 매년 비슷한 D장조 대형 세레나데를 적어 두었는데, K.320은 그 일련의 마지막이자 가장 야심찬 자리입니다. 자필악보 표지에 모차르트는 “Finalmusik 1779”라는 작은 메모를 남겨 두었고, 1779년 8월 3일이라는 작곡 완료 일자도 명기되어 있습니다. 그해 종강은 8월 5일 또는 9일경으로 추정되며,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직(연봉 450굴덴)을 맡은 직후의 마지막 큰 야외 자리로 이 작품을 적어 두었습니다 — 이듬해 〈이도메네오〉 작곡 의뢰가 들어오고, 그 다음 해(1781)에는 콜로레도 대주교와 결별하고 빈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즉 K.320은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 시기에 마지막으로 풀어 둔 세레나데이자, 잘츠부르크식 야외 의식 음악의 한 시대를 닫는 자리입니다. 별명 “Posthorn”의 출처는 6악장 두 번째 트리오입니다. 18세기 잘츠부르크에서 우편마차(Postkutsche)는 오늘날의 시외버스에 해당했고, 마부는 손에 든 작은 신호 호른(Posthorn)으로 마을마다 도착·출발을 알렸습니다 — F장조 1옥타브 자연 음렬만 부는 단순한 신호 악기입니다. 모차르트는 이 일상의 소리를 그대로 가져와 트리오 한 자락에 그대로 박아 넣었고, 자리에 모인 학생들에게는 “이제 곧 떠나는 마차가 온다”는 시대의 농담이자 작별 인사로 들렸을 자리입니다. 신호 호른은 작품 전체에서 단 이 한 자락 — 두 번째 트리오 — 에만 등장하고 다른 어떤 자리에서도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같은 D장조의 행진곡 K.335 No.1(아마도 K.335 No.2까지)이 이 세레나데와 함께 적힌 것으로 보이며, 학생들의 행진 도착·퇴장 신호 음악으로 짝지어 연주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날 일부 지휘자(특히 하르농쿠르)는 이 행진곡을 세레나데 앞뒤로 다시 붙여 1779년의 야외 자리를 재현하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