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C장조로 된 단일 곡입니다. 악장 구분이 없고 연주 시간도 2분을 넘기지 않아, 모차르트가 남긴 성악곡 가운데 가장 작은 축에 듭니다. 바탕이 된 페랑의 시는 열세 행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한 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절을 나눠 같은 가락을 되풀이할 자리가 애초에 없는 형태라, 노래는 시가 흘러가는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쓰입니다. 성악 선율은 한 음절에 한 음을 붙이는 방식으로 담백하게 나아가고, 화려한 기교를 요구하는 대목을 두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아리에트가 본래 살롱에서 부르는 노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건반은 노래를 앞지르지 않고 화성을 받쳐 주는 자리에 머무릅니다.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의 문법에도, 훗날의 독일 가곡 문법에도 기대지 않은 곡입니다. 모차르트가 프랑스 노래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 본 흔적이 그만큼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모차르트는 1777년 가을 일자리를 찾아 만하임에 닿았습니다. 당시 만하임 궁정악단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오케스트라로 꼽히던 곳이었고, 그는 이곳에서 여러 연주자 가문과 가까워졌습니다. 그중 하나가 플루트 주자 요한 바프티스트 벤틀링의 집안이었습니다. 벤틀링의 딸 엘리자베트 아우구스타는 실력 있는 소프라노였습니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프랑스어 시 두 편을 건넸고, 모차르트는 곧바로 노래 두 곡을 붙였습니다. 이 곡과 〈외딴 숲속에서〉 K.308이 그렇게 짝을 이뤄 태어났습니다. 자필보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두 곡을 품고 있던 기간은 1777년 10월 30일부터 이듬해 3월 14일까지였습니다. 아우구스타를 두고 전하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녀는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청혼을 거절한 적이 있었는데, 모차르트는 그 이야기를 재미있어했습니다. 여덟 살 무렵 런던에서 만나 무릎에 앉혀 놓고 함께 건반을 두드리던 상대가 바로 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였습니다. 가사를 쓴 앙투안 페랑은 모차르트보다 한 세기 앞선 프랑스 시인으로, 1719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철새가 거처를 옮기는 까닭을 사랑의 논리로 풀어낸 이 시는 당시 프랑스 살롱에서 즐겨 읽히던 가벼운 서정시의 전형이었습니다. 곡을 쓴 시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모차르트는 만하임을 떠나 곧장 파리로 향할 참이었고, 그곳에서 프랑스 청중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프랑스어 노래를 손에 익혀 두는 일은 그 자체로 준비이자 명함이었습니다. 다만 정작 파리 체류는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그는 이듬해 어머니를 그곳에서 잃고 빈손으로 돌아옵니다. 노래가 인쇄물로 세상에 나온 것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 뒤였습니다. 1799년 라이프치히의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이 펴낸 「모차르트 작품집」 다섯째 묶음에 서른 편의 아리아·가곡과 함께 실리면서 비로소 활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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