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목관 8중주(오보에 2, 클라리넷 2, 호른 2, 바순 2)를 위한 다섯 악장 구성입니다. 18세기 후반 빈 궁정에서 황제 요제프 2세가 1782년에 설치한 k.k. Harmonie 편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본 작품의 진위 논쟁 한가운데에 늘 등장하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황제의 하르모니무지크 표준 편성이 등장하기 7년 전인 1775년에 모차르트가 이런 편성을 미리 썼다는 점에서 이른 시기의 선구작으로 보는 시각과, 후대 누군가가 모차르트의 이름을 빌려 다듬은 위작으로 보는 시각이 함께 존재합니다.
악장 짜임새는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소나타 형식으로 문을 연 뒤, 2악장 미뉴에트와 트리오, 3악장 로망스 아다지오, 4악장 다시 미뉴에트와 트리오로 이어집니다. 두 미뉴에트가 가운데 느린 악장을 감싸는 대칭형 5악장 구조는 같은 1775년의 〈디베르티멘토 F장조〉 K.213 이래 모차르트가 빈 시기 목관 세레나데에서 즐겨 쓰던 짜임새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5악장 론도 안단테 - 알레그로는 느린 도입부에서 빠른 본론으로 이어지는 마무리 악장입니다.
원래 6중주(클라리넷 2, 호른 2, 바순 2) 편성으로 전해진 판본도 함께 남아 있어, 1801년 라이프치히의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이 〈Trois Pièces d'Harmonie(세 곡의 하르모니무지크)〉의 두 번째 곡으로 처음 활자화했을 때부터 두 편성이 나란히 유통되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첫 전기 작가 프란츠 사버 니메체크(Franz Xaver Niemeček, 1766~1849)가 프라하에서 입수한 목관 작품 묶음의 한 곡으로 본 작품이 19세기 초에 세상에 알려졌고, 1862년 첫 쾨헬 카탈로그(K¹)는 본 작품을 의심작 부록 Anhang 226에 두었습니다. 1937년 알프레트 아인슈타인(Alfred Einstein)이 정리한 3판은 새로 확보된 정황 자료를 바탕으로 K.196e라는 본 번호를 부여해 본 목록으로 승격시켰고, 1964년 볼프강 플라트(Wolfgang Plath)가 정리한 6판은 다시 의심작 부록 C 17.01로 옮겼습니다. 2024년 9판은 아인슈타인의 분류를 복원해 다시 K.196e로 돌렸지만, 의심작 표기는 그대로 유지되어 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1775년 1월, 열아홉 살의 모차르트는 자신의 새 오페라 〈가짜 여정원사(La finta giardiniera)〉 K.196의 초연을 위해 뮌헨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본 작품의 K번호 196e가 본편 오페라 K.196의 뒤에 붙은 이유도 바로 그 동거 시기에서 비롯합니다. 같은 1월 13일 뮌헨 살바토어 극장에서 본편 오페라가 초연되었고, 본 작품 디베르티멘토도 그 무렵 뮌헨 궁정의 목관 연주자들을 위해 적어 둔 작품으로 전해집니다. 뮌헨 궁정에는 당시 유럽에서도 손꼽히던 바순 연주자 형제가 머물고 있었고, 아마추어 바순 연주자 타데우스 폰 뒤르니츠(Thaddäus von Dürnitz) 남작도 같은 도시에 체류 중이었습니다. 모차르트가 뮌헨에서 본 작품과 함께 바순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K.292(196c)를 같은 시기에 적어 두었다는 사실도, 그 도시의 활발한 목관 음악 분위기를 뒷받침합니다.
다만 본 작품의 자필악보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모차르트가 직접 손으로 쓴 종이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본 작품을 의심작으로 만드는 가장 큰 근거입니다. 1801년 라이프치히의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이 〈Trois Pièces d'Harmonie〉의 두 번째 곡으로 본 작품을 처음 활자화한 출판본이 가장 이른 자료이며, 그 출판 경로는 프라하의 모차르트 첫 전기 작가 니메체크에게 거슬러 올라갑니다.
니메체크는 모차르트가 1787년과 1791년 〈돈 조반니〉·〈티토 황제의 자비〉 초연을 위해 프라하에 머물 때 친분을 맺은 인물입니다. 모차르트 사후 1798년에 가장 이른 모차르트 전기 〈Lebensbeschreibung des k.k. Kapellmeisters Wolfgang Gottlieb Mozart〉를 펴낸 학자였고, 모차르트의 미망인 콘스탄체와 그의 둘째 아들 프란츠 자버 모차르트의 후원자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프라하에서 입수해 보관해 두었던 목관 작품들의 묶음에서 본 작품과 자매 작품 K.Anh.227(B♭장조)이 함께 발견되었고, 이 묶음이 19세기 초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로 흘러들어 〈Trois Pièces d'Harmonie〉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본 작품의 진위에 대해 음악학자들의 의견은 19세기 후반부터 갈렸습니다. 모차르트 학자 조르주 드 생-푸아(Georges de Saint-Foix, 1874~1954)와 모차르트 자료 편찬자 게오르크 킨스키(Georg Kinsky, 1882~1951)는 본 작품을 모차르트의 진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양식·조성·5악장 대칭형 구성이 1775년 모차르트의 다른 디베르티멘토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 그 근거였습니다. 반면 1937년 쾨헬 3판을 정리한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은 본 작품을 K.196e로 본 목록에 올리면서도 그 진위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고, 1964년 6판의 볼프강 플라트는 다시 의심작 부록으로 옮겼습니다. 2024년의 9판이 다시 K.196e로 돌려놓은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서 본 작품의 진위는 결론이 나지 않은 미결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본 작품이 모차르트의 진작이라고 가정하면, 황제 요제프 2세가 1782년 빈 궁정에 8인 목관 앙상블 k.k. Harmonie를 설치하기 7년 전에 모차르트가 같은 편성을 이미 다루고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모차르트가 1781년 〈세레나데 제11번 E♭장조〉 K.375를 처음에 클라리넷·호른·바순 6중주로 적은 뒤 1782년에 오보에 2대를 더해 8중주로 확장한 사연을 떠올리면, 본 작품이 1775년 뮌헨에서 이미 8중주 편성을 시험한 작품으로 본다는 가설은 음악사적으로 적잖은 무게를 지닙니다. 반대로 본 작품을 위작으로 본다면, 1801년 출판 직전에 누군가가 18세기 후반 모차르트 양식을 정확히 모사해 본 작품을 적어 두었다는 가설이 성립합니다. 어느 쪽이든 본 작품은 모차르트 진작 카탈로그의 변두리에서 250년 가까이 본 목록과 부록을 오가며 살아남은 매우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본 작품을 가장 또렷이 풀어 둔 녹음은 1970년 네덜란드 윈드 앙상블(Netherlands Wind Ensemble)과 지휘자 에도 데 바르트(Edo de Waart)가 필립스(Philips) 레이블에서 적어 둔 음반입니다. 같은 묶음 자매 작품 K.Anh.227과 K.270을 함께 수록한 〈Mozart: Divertimenti III〉 LP로, 본 의심작군 전체를 한 호흡으로 다룬 가장 이른 정규 녹음 가운데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