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오보에 두 대와 호른 두 대, 그리고 비올라가 빠진 현악 파트로 이루어진 작은 무도회 악단을 위한 음악입니다. 비올라 없이 윗선율과 베이스만으로 짜인 짜임새는 18세기 후반 빈·잘츠부르크 사교 무곡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모차르트가 어른이 되어 빈 호프부르크 레두텐잘에서 써 내게 될 K.534 〈뇌우〉·K.535 〈전투〉와도 같은 결을 공유합니다. 전체 길이는 반복 포함 1분 남짓의 단 한 곡짜리 콘트라당스로, 두 토막의 짧은 가락이 차례로 줄춤을 이끕니다. B♭장조의 부드러운 첫 가락을 오보에가 받아 들고, 호른이 그 아래에 가벼운 받침음을 놓아 무도회장의 한 줄을 그리듯 흘러갑니다. 행진곡 같은 외부 신호 없이 오로지 무도회의 풍경에만 충실한, 모차르트가 14세에 옮겨 적은 사교 무곡의 단정한 한 자리입니다. 자필 악보 마지막에 모차르트가 직접 적어 둔 별도의 표제는 없습니다. 후일 1882년 라이프치히의 브라이트코프&헤르텔이 펴낸 〈모차르트 전집〉에 구스타프 노테봄(Gustav Nottebohm)의 편집으로 처음 활자 악보로 실리면서, 비로소 일반 연주가들에게 닿게 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1769년 12월, 모차르트는 아버지 레오폴트와 함께 첫 이탈리아 여행에 올랐습니다. 14세의 모차르트가 이탈리아 음악계 한복판에서 자기 이름을 알리도록 만든다는 야심 찬 여행이었습니다. 1770년 4월 11일 성수요일 저녁, 부자는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고 그날 곧장 시스틴 성당으로 향해 그 유명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처음 들었습니다. 다음 날 모차르트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그 곡을 한 음표도 빠뜨리지 않고 기억에서 받아 적어 냈다고 전해집니다. K.123 콘트라당스는 바로 그 주, 1770년 4월 14일자로 로마에서 잘츠부르크의 어머니 안나 마리아와 누이 난네를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되었습니다. 레오폴트는 편지 본문에서 일상적인 안부와 시스틴 성당 〈미제레레〉의 일화를 길게 적은 끝에, 짧게 한 줄을 덧붙입니다. "Wolfgang lässt sich empfehlen und schickt dabey eine Contredanse(볼프강이 인사를 전하며 콘트라당스 한 곡을 함께 보낸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시절부터 콘트라당스를 즐겼고, 누이 난네를이 그 곡들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좋아했습니다. 이 한 곡은 로마 한복판에서 가족에게 띄운 작은 음악 편지였던 셈입니다. 자필 악보는 오늘날 베를린 국립도서관(Staatsbibliothek zu Berlin)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작품 자체는 모차르트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고, 한 세기 가까이 잠들어 있다가 1882년 라이프치히 브라이트코프&헤르텔이 펴낸 〈모차르트 전집(Mozarts Werke)〉에 구스타프 노테봄의 편집으로 처음 활자 악보로 실렸습니다. 1차 이탈리아 여행 중에 모차르트가 남긴 짧은 무곡 한 곡이라는 점에서, 같은 시기 〈미제레레〉 일화·교향곡 K.74·미사곡 같은 큰 작품 사이에 끼어 있는 사적이고 자그마한 풍경입니다. 쾨헬 1판(1862)에서는 한동안 K.73g로 분류되었다가,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의 6판(1937)에서도 73g 자리를 그대로 유지했고, 오늘날 폭넓게 쓰이는 9판에 와서 K.123이라는 정식 번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