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안티폰 본문을 네 부분으로 나눠 붙인 네 악장 구성입니다. 바깥의 첫째와 넷째 악장은 합창이 화음을 쌓아 올리며 관현악 총주 위에 얹히고, 안쪽의 둘째와 셋째 악장은 소프라노 독창이 중심에 섭니다. 밝게 열고 조용히 가라앉았다가 다시 밝게 닫는 배치라, 네 악장을 이어 들으면 하나의 둥근 곡선이 그려집니다. 악장마다 관현악의 두께를 바꾸는 방식이 눈여겨볼 만합니다. 둘째 악장에서는 오보에가 물러나고 플루트가 대신 들어와 음색이 한결 부드러워지며, 셋째 악장에서는 관악기를 모두 덜어 내고 현악기만 남겨 제1바이올린에 긴 선율을 맡깁니다. 그러다 마지막 악장에서 트럼펫과 팀파니가 되돌아와 첫 악장의 광채를 되찾습니다. 신모차르트전집 편집자 서문은 이 곡을 나폴리 교회음악을 본보기로 삼은 작품으로 규정하면서, 네 악장을 짜 맞추는 방식에서 교향곡의 영향을 함께 지적합니다. 가사 때문에 느린 악장이 하나 더 들어간 점만 교향곡과 다릅니다. C장조에 트럼펫과 팀파니를 얹는 배합은 당시 잘츠부르크에서 큰 축일의 교회음악에 쓰이던 관용적 어법입니다. 바이올린이 잘게 움직이며 소란스럽게 술렁이는 음형도 이 지역 교회음악의 특징으로, 열다섯 살의 모차르트가 고향의 관습을 그대로 익혀 쓰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비올라를 두 성부로 나눈 짜임도 이 곡의 특징입니다. 중간 음역을 두 겹으로 채워 합창과 관현악 사이를 두툼하게 메우는데, 같은 시기 잘츠부르크 교회음악에서 즐겨 쓰던 방식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자필 악보가 베를린 국립도서관에 남아 있고, 표제에 「1771년 5월」이 적혀 있습니다. 덕분에 작곡 시기를 추정하지 않고 확정할 수 있는 드문 초기작입니다. 모차르트는 그해 3월 28일 1차 이탈리아 여행에서 잘츠부르크로 돌아왔고 8월 13일 다시 떠났으니, 이 곡은 두 여행 사이의 짧은 고향 체류기에 쓴 셈입니다. 1771년의 부활절은 3월 31일, 성령강림은 5월 19일이었습니다. 부활 시기에만 부르는 안티폰인 만큼 작곡 시점이 전례 절기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다만 어느 날 어떤 미사에서 처음 울렸는지를 알려 주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곡을 누가 불렀는지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레오폴트가 남긴 편지에 아들의 레지나 첼리가 「하이든 부인」, 곧 미하엘 하이든의 아내이자 궁정 소프라노였던 마리아 막달레나 리프를 위해 쓰였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문제는 모차르트가 이 가사에 붙인 곡이 여럿이라, 편지가 가리키는 것이 이 작품인지 이듬해에 쓴 K.127인지 편지만으로는 가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두 곡 중 하나를 위한 기록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느 쪽인지는 미확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자필보는 판본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신모차르트전집 편집자는 비올라 성부에 기둥이 둘로 갈라진 표기가 있고 성부 이름도 복수형으로 적혀 있는 점을 근거로, 비올라를 두 대로 나눠 연주하는 것이 모차르트의 의도였다고 판정했습니다. 반대로 바이올린 성부의 이중음은 나눠 연주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보아 기둥을 하나로 정리했습니다. 인터넷에는 원래 판본에 비올라 성부가 아예 없었다는 서술이 돌아다니지만, 자필보의 기술과 출판사가 펴낸 파트보 구성이 모두 이를 부정합니다. 같은 서문에는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관찰도 실려 있습니다. 마지막 「알렐루야」에서 모차르트가 제1바이올린에 어떤 대목에서는 점을 찍고 그와 나란히 이어지는 다른 대목에서는 짧은 선을 그었다는 것입니다. 편집자는 이를 근거로 이 무렵의 모차르트가 두 기호를 구별해 쓰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인쇄된 악보로 세상에 나온 것은 작곡으로부터 백십 년이 지난 1880년이었습니다. 라이프치히의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이 펴낸 옛 모차르트 전집의 소규모 종교 성악곡 권에 구스타프 노테봄의 교정으로 실렸습니다. 음반으로도 오랫동안 만나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1991년 미국합창지휘자협회 학술지에 실린 모차르트 합창곡 디스코그래피에서 이 곡 항목에는 사실상 한 종만 올라 있을 정도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