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앞둔 큐레이터가 만난 모차르트 친필 노트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에서 모차르트의 1778년 친필 노트를 알아본 사람은, 은퇴 직전 묵은 자료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던 큐레이터 프랑수아-피에르 고이였다. 몇 주 전 살펴봤던 다른 모차르트 자료가 결정적 단서가 됐다. "이런 걸 만나리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라는 그의 말처럼, 248년을 잠들어 있던 종이 묶음의 신원이 한 사람의 손에서 드러났다.

프랑수아-피에르 고이(François-Pierre Goy)는 BnF 음악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다. 은퇴를 앞두고 산더미 같은 자료를 정리하던 차에 18세기 후반의 한 사보 묶음을 마주쳤다. 마침 몇 주 전 모차르트가 교습용으로 직접 쓴 다른 자료들을 들여다본 참이었고, 그 기억이 떠오르며 필적의 유사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높은음자리표가 둥글고 살짝 앞으로 기울어져 있죠."
그가 짚은 또 다른 단서는 낮은음자리표였다. 모차르트의 낮은음자리표가 당시 프랑스 작곡가들이 쓰던 방식과 반대였다는 것이다. 고이는 모차르트의 다른 친필 — 특히 귄 공작(Duke of Guines)이 위촉했던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의 자필 사본 — 과 노트를 나란히 놓고 대조했다. 두 문헌에 동일한 인장(stamp)이 찍혀 있었다.
이 자료는 2026년 4월,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테움 재단 디렉터 아르민 브린징(Armin Brinzing)이 공식 인증했다. 노트의 정체는 다음과 같다 — 22세의 모차르트가 1778년 5월에서 7월 사이 파리에 머무는 동안, 귄 공작의 딸 마리-루이즈-필리핀 드 보니에르 드 귄(Marie-Louise-Philippine de Bonnières de Guînes)에게 작곡 수업을 하며 직접 쓴 44쪽 분량의 교습 노트다.
귄 공작은 18세기 파리에서 손꼽히는 플루트 연주자였고, 지금은 친숙해진 모차르트의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을 위촉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까운 측근이었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영국으로 망명했다. BnF에 따르면 이 노트는 "1794년 귄 공작의 자택에서 압수된 음악 두 묶음의 일부"였다.
모차르트와 공작의 관계는 매끄럽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공작의 음악적 재능에 감탄했지만, 정작 가르치던 딸은 그만한 재능을 보이지 않아 답답해했다. 공작은 수업료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고, 모차르트는 공작의 집사를 통해 원래 약속된 금액의 절반만 제시받자 그 돈을 거절했다고 전한다. 정작 노트에는 학생에게 매일 내준 작곡 연습 과제와 함께, 부녀가 함께 연주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는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일곱 곡이 담겨 있다.